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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신학

이집트 역사와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

by 운영자 2022. 2. 5.

이집트 역사와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



 역사 이집트의 5천년 역사는 고왕국 시대(BC 2550-2180), 중왕국 시대(BC 2040-1990), 제2중왕국 시대(BC 1785-1565), 신왕국 시대(BC 1565-1070), 말기 왕조시대(BC 667-332), 이후 헬라의 프톨레미 왕조의 지배하에 있다가 로마와 비잔틴 제국시대(BC 40-AD 451), AD 642년 이후 이슬람에 정복당하였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집트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이집트 성경에서 이집트의 기원은 창세기 10:6에 노아의 저주받은 셋째 아들 함의 둘째 아들, ‘미스라임’에서 찾을 수 있다. ‘미스라임’은 고대 이집트의 이름으로, 이집트인들은 함의 자손이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다. 

 

시편 105:23에도 야곱의 70가족이 애굽에 내려간 것을 이스라엘이 ‘함 땅’에서 객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애굽으로 내려갔고(창세기 12:10) 성경은 애굽땅을 여호와의 동산 같았다고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13:10). 신명기 11:10에도 애굽을 ‘발로 물대는 땅’으로 기록된 것은 이집트가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지역이지만 나일강의 풍부한 물을 주변 농경지에 수로를 만들어 물을 발로 퍼올려 농사를 지었던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애굽의 국무총리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는 BC 1886년으로 애굽의 북동쪽에서 온 셈족 계통의 힉소스 왕조가 통치하던 시기로 요셉의 일가를 우대하여 그들의 보호를 받아 엄청난 자손의 번성이 가능하였다. 야곱이 고센 땅을 원하였던 이유는 고센 땅이 나일강 삼각주에 위치한 풍요한 땅이기도 했지만, 후손들이 횃불 언약에 따라 출애굽할 것을 믿고 애굽의 국경 근처에 위치한 가나안에서 가장 가까운 땅을 선택한 것이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출애굽기 1:8, 사도행전 7:18)’은 히브리어로 ‘다른 왕’이란 뜻으로 BC 1580년 경 셈족인 힉소스 왕조를 무너뜨리고 애굽 본토인이었던 제18왕조가 들어섰음을 알려준다. 새 왕은 18왕조의 제3대 왕 투트모세 1세(BC 1539-1514)로 ‘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출애굽기 1:10)’고 한 우리의대적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셈족인 힉소스 족속을 가리킨다. 18왕조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힉소스인의 잔존 세력으로 보고 심한 차별 정책을 실시하여, 요셉과 맺은 언약과 그의 업적도 완전히 말살하고 노예화하여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바로 왕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두 도시 비돔(숙곳)과 라암셋을 건설하는 데 이스라엘 백성을 동원하였다.

 

 

구속사의 도

 구속사의 도구로 사용된 이집트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나타난 시기는 바로 횃볼 언약 중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종살이를 마치고 나올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선민에 대한 강한 압제 정책은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과 애굽을 분리시키고 애굽이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타향임을 깨우쳐 하나님께 울부 짖으며 간구하도록 섭리하신 것이다(출애굽기 2:23). 그 탄압과 고역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그 후손들은 애굽을 ‘쇠풀무 곧 애굽’(신명기 4:20), ‘철 풀무 애굽’(열왕기상 8:51), ‘쇠 풀무 애굽 땅’(예레미야 11:4)이라고 기록하였다.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시므로(출애굽기 12:12, 민수기 33:4)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증거하였다(출애굽기 10:2).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로 이집트는 세계의 중심국가에서 주변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