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전승 -연대기와 이스라엘 신앙의 전승
1. 출애굽 전승과 연대기
유대교와 전통적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출애굽기의 저자는 모세이며 시내산 언약체결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출 17:14; 24:4; 34:27). 이러한 전통적 견해를 뒤집은 사람이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이다. 그에 의하면 “족장시대의 역사적 지식은 전혀 얻을 수 없는 족장들의 이야기며, 이스라엘 민족들에 의해 후대에 기록된 전승(Tradition)일 뿐이며, 족장기사는 허구일 뿐이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아브라함의 사건은 무의식 예술의 자작 창작으로 취급하여야 할 문학이다”라고 하였다. 소위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 혹은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이라고 부르는 학설의 이론을 제공한 인물이다. 문서설로 일컫는 이 학설은 모세오경이 익명의 제사장 계열의 편집자들에 의하여 다듬어진 문서들로 포로기 혹은 그 이후인 BC 600-400년경 작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그 권위를 증거하고 있다(딤후 3:16). 이러한 역사비평으로 일컫는 자유주의자들을 향해 성경의 무오성을 주장하는 학자가 있었다. 바로 존 그레샴 메첸(J.G. Machen)이다. 그는 성경의 무오성이라는 교리가 권위 있는 가르침과 도덕성을 상술함에 있어 불완전성을 막아 준다고 확신하였다(J.G. Machen, Christianity and Liberalism, 1976).
율법서인 모세오경은 정경(Canon)으로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선포하였을 때(출 24:7), 대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서를 서기관 사반에 의해 요시아 왕에게 그리고 회중에게 읽어 낭독하였을 때(왕하 22:8-9; 대하 34:14), 학사 에스라가 율법서를 낭독하였을 때(느 8:9; 14-17; 10:28-39; 13:1-3)에도 언제나 모세오경이었다.
구약성경은 시대별로 영감받은 자들에 의해 오경을 언급하였다(수 7:11; 8:31; 23:6-8; 왕상 2:3; 왕하 14:6; 17:37; 대상 16:40; 대하 17:9; 23:18; 30:5,18; 31:3; 35:26 등). 오경 속에는 저자로서 모세의 활동을 언급한다(출 17:14; 24:4-7; 34:27; 민 33:2; 신 28:58-61; 29:20-27; 30:10; 31:9-13 등). 또한 역사적으로 모세오경은 기원전 3세기경 헬라어로 번역되어 70인역의 첫 부분을 정경으로 그 권위를 인정하였다. 이 시기에 이미 창세기를 비롯하여 모세오경이 모세의 기록으로 인정되었음을 볼 수 있다(Eusebius, Preparation for the Gospel, 13:12). 사마리아 오경에서도 모세오경을 보존하였다는 사실 또한 이를 증거하고 있다(Proto-Samaritan text type).
신약성경에도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로 된 언급이 12회나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역사적 사실로 말씀하셨다(눅 16:16, 29-31). 사도 바울 또한 다 믿는다고 확신하였다(행 24:14; 26:22). 이와 같이 성경의 정경성을 인정한다면 출애굽 연대는 초기 연대설(Early Date)로 주장하는 15세기 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출애굽 15세기설의 근거는 열왕기상 6장 1절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학자들에 의하면 출애굽이 솔로몬 즉위 4년보다 480년 전에 있었다는 기사를 바탕으로 산정하고, 성전 건축 연대가 기원전 966, 960, 957년경으로 추정됨에 따라 출애굽 연도는 기원전 1446/1440/1437년이 된다.
2. 이스라엘 신앙의 기초인 출애굽 해방 전승
이스라엘 신앙의 논의할 여지 없는 특성은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야훼"라는 이름으로 일관되게 신앙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특성은 이스라엘이 저토록 일관되게 자신들의 유일한 하나님으로 신앙고백해 온 그 야훼 하나님이란 매우 자주 "애굽"(Egypt)이라는 이름과 결부된 어떤 역사적 사건들 때문에 비로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고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애굽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자기 "아이덴티티"를 인식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그런 말이라 하겠다. 즉 이스라엘 신앙의 발생은 그 처음부터 그 어떤, 부처님의 개인적 대오각성과 같은 그런 종교적 각성을 통해서 이루어진 그런 것이 결코 아니라 한 사회 집단의 역사적 "구원의 경험"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는 그런 말이라 하겠다.
1) 역사신조(歷史信條)
이러한 증언은 구약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우리는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과거역사를 요약하여 교리문답형식(catechism-like)으로 신앙고백하였을 것으로 학자들이 추측해 온, 소위 말하는, 고대의 "짧은 역사 신조"(short historical credo)들 속에서 출애굽 구원사건에 관한 신앙고백이 얼마나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느냐 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신명기적 전승에 의하면, 토지소산의 첫 열매를 예물로 바치던 한 이스라엘 사람이 예물을 드리러 와서 우선 그 예물을 제단 앞에 놓고, 교리문을 낭독하듯이, 이렇게 신앙고백을 먼저 고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안식일 법규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이러한 자기 정체성 정립은, 그러나, 야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여러 종류의 계명을 주시는 그 이유를 제시하실 때 유독히 출애굽 전승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
3) 축제 규례에서
유월절 규례나 초막절 규례 등을 지켜야 할 그 역사적 이유가 전적으로 출애굽 구원사건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특히 성결법전(H)의 기자는 이스라엘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각 후세대에게" 즉 미래의 세대에게 야훼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행위를 알리기 위하여 초막절이 지켜져야 한다고 하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행위를 기억하고 인식하는 일이 축제예배의 근본동기요 근거요 목적이라는 그런 말이다.
4) 기타 법전자료
축제의 규례뿐만 아니라, 위에서 이미 언급한 십계명을 포함하여, 그 이외의 구약에 나타나고 있는 신명기 법전, 계약법전, 그리고 성결법전 등의 법전자료들 속에 나타나는, 이른바, 노예를 다루는 노예법과 그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이민해 온 외국인 나그네들을 다루는 이민법 등에서도 또한 출애굽 전승은 법준수의 이유, 근거, 목적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 역사해석의 범례
출애굽 구원이라는 사건은, 즉 모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역사적 현실의 복잡한 구조를 포함하고 있는 이 사건은, 우선, 조상들에게 전수되어 왔던 신앙유산, 이른바, 민족형성에 관한 "약속"과 그 약속의 "성취"를 믿고 살아가던 조상들의 신앙유산과 만났던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출애굽 구원사건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 의하여 우선, "민족형성에 관한 신의 약속이 성취된 사건"으로서 이해되고 신앙고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의 신앙공동체 안에서 확고한 신앙적 유산이 되어 역사가들과 예언자들과 그리고 시인들의 손을 거쳐 계속적으로 전수, 발전되어 갔던 것이다.
참고문헌)
출애굽 해방사건의 구약신학적 의미 -출 14~15장 해석을 중심하여 / 김이곤
출애굽 시대의 성경적 연대기 설 / 장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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