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사도행전 - 진 에드워드
제1장 D-day 2개월전
때는 서기 30년 3월경.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수많은 배들이 가이사랴와 유대의 작은 항구들로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도착하는 배들은 대부분 승객들로 꽉 차 있었고, 사람들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총총히 발 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매년 이때쯤만 되면 유대에서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길들은 여행객들로 가득 메워졌다.
예루살렘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이 오랜 전통으로 내려온 종교적 축제들을 지내기 위해 방문하는 성지가 되었다. 이 축제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세계 만국 박람회와 같은 축제행사이면서도 종교적으로는 엄숙한 순례 행렬의 의미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축제일뿐아니라, 그동안 흩어져 있던 가족들과 친척들이 서로 상봉하는 유대의 가장 큰 명절이기도 했다.
축제기간은 약 60일이나 계속되었다. 유월절의 엄숙한 날들을 시작으로, 첫 소산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초실절과 이로부터 7주후에 열리는 칠칠절까지 이 명절은 길고도 중요한 축제였다. 유대인들은 이 축제 기간을 자그마치 천년이상 종교적, 사회적 관습으로 지켜 왔다. 실제로 따져보면, 주후 30년이 돼서도 기념하고 있는 이 축제는 거의 15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대 순례자들은 대부분 유월절 의례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월절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려주신 귀한 약속의 의식으로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유월절이 지나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중요한 축제는 초실절이다. 이 절기는 종교적 의미에 있어서 유월절보다는 모호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날 유대인들은 그해 수확한 곡식의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다.
초실절은 유월절이 3일이 지나고 행해지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그 초실절은 단지 경제적이고 기복적인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련의 사건을 보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예루살렘 한쪽에서는 그 나사렛 청년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지만, 다른 한족에서는 축제의 원활함을 위해 제사장들이 유월절에 드릴 흠 없는 양을 선별하고 제사드릴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같은 시기에 나사렛 청년에 대한 사형 집행과 유월절 양을 드리는 제사가 동시에 준비되었다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에서 볼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기원 후 30년에 치러진 유월절과 초실절은 나사렛에서 온 청년 예수로 인해, 축제 역사상 가장 어수선 했던 날로 기록되고야 말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7주후에 돌아오는 오순절만은 더 이상 그런 일 없이 경건하고 의미 있는 축제일이 되기를 기원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 2장 D-day 1일전, 아침5시~8시
기원후 30년 5월 29일 일요일, 시간은 새벽 5시경이었다. 아직 동은 트지 않았고, 예루살렘에는 어둠의 적막이 깔려 있었다. 성전 문이 살며시 열리면서 한 제사장이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는 계단을 내려와 예루살렘 거리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새벽녙의 안개 사이로 길거리에서 웅크린 자세로 자고 있는 순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들을 밟지 않도록 몸을 이리저리 피하며, 총총 걸음으로 미로같은 거리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성문을 통과해서 넓게 펼져진 밀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7주전, 초실절을 위해 첫 이삭을 거둔 바로 그곳이었다.
새벽녘, 제사장이 밭을 행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을 때, 도시의 다른 곳에서도 몇몇 무리들이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사형당한 나사렛 청년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로, 성전 근처에 있는 다락방에서 모임을 갖기로 되어 있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제사장이 밭으로 나간 이유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자그마티 백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그 아침에 다락방에 모였던 것일까? 그들이 모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49일전, 나사렛 청년 예수가 갈보리 언덕에서 사형에 처했던 유월절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금 모인 그 수백명의 무리는 사실 예수가 죽던 순간을 지켜 본 증인들이다. 예수가 죽은 후 이틀동안 그들은 인간이 맛볼 수 있는 최악의 슬픔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예수가 죽은지 3일째 되는 일요일 아침,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무덤에 다녀와서 증언한 목격담은 최악의 절망에 있던 그들에게 최상의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그 후 5주동안, 부활한 예수는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예수는 부활한지 40일이 되는 날, 예루살렘 근처의 올리브 언덕에서 제자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우었다. 거기서 그는 12명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권능을 받을 것이다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그것은 그동안 자신과 함게했던 다른 무리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하고 성령이 임하는 때를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예수는 이명령을 한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120명의 사람들이 2층 다락방에 모여 앉았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조용히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누군가가 먼저 시편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함께 그 찬앵에 동참했다. 정작 그들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그 모임의 시작은 곧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오순절 축제는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서 단지 빵을 높이 들어 올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순절은 기원 후 30년을 지나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 날이 되었다. 오순절은 그 동안 모호한 의미를 갖던 유대의 절기에서 영적으로 분명한 의미를 갖는 날로 바뀌게 되었다. 창조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결정적인 사건이 마침내 이 오순절에 일어나고 있었다. 창조의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결정적인 사건이 마침내 이 오순절에 일어나고 있었다. 오순절 기간을 통해 이우주의 존재 목적이 원래 하나님이 뜻하셨던 바대로 계속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고귀한 계획이 마침내 이땅에서 드러나 펼쳐지고 있었다.
제 3장 D-day 1일전, 아침 8시
베드로는 2층의 다락방 문을 지나 베드로는 길가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본다. 건물 앞에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순례자들이 줄지어 다락방을 향해 서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그들은 베드로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로부터 지금 일어난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그의 이목을 집중하고 있었다. 이제 하나님이 베드로의 입을 빌어 군중들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셔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베드로가 군종으로 나서는 순간, 그의 마음과 생각은 온전히 예수님께 맡겨진 상태였다. 마치 유월절에 거둔 곡식이 잘 반죽되고 구워져서 먹음직스러운 빵이 되듯이, 베드로 역시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귀하게 준비되어 온 듯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슴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제는 그는 제자 베드로가 아니라, 사명을 받고 보냄을 받은 사도 베드로가 된 것이다.
순례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모국어로 그리스어나 라틴어 또는 로마 제국에서 쓰이는 수십 종류의 토속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다락방에서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큰 소리가 울려나왔던 것이었다. 베드로는 이 일에 대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에 대한 예수의 약속을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이 나와 순례자들의 언어로 베드로가 전달하고 있는 설교의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들이 술에 취해 주정한다고 매도했지만 베드로는 그들 앞에서 당당하게 설교하기 시작한다. “지금은 9시도 되지 않은 아침입니다. 그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다락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엘서의 말씀을 가지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임은 바로 다락방에 모인 120여 명의 사도와 제자들이었다. 여기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다. 저녁 때까지 회심한 사람들의 수는 3천명에 육박하게 되었다.
이 날은 기독교 역사에서, 또한 예루살렘에서 가장 기쁘고 감격적인 날로 기록될 만했다. 사람들의 임에서는 온종일 찬양이 흘러나왔다. 그들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자기 영혼의 깊은 곳에서 넘쳐나는 기쁨을 조절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성령이 이땅에 임하셨고, 일을 시작하셨다는 조그만 증거에 불과했다.
교회는 처음 120여명의 제자들을 통해 시작되었고, 12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한 사람들의 수는 3천명이나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첫 모습이었다.
제 4장 D-day 를 준비하다.
다음 날, 성전 뜰에는 어제 베드로의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은 3천여 명의 사람들이 다시 모일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에게 닥친 중요한 일은 앞으로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를 이끄는 데 있어 12사도들이 당면한 현실적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첫째는 그들의 출신지가 지도력에 걸림돌이 되었다. 12사도들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었다. 갈릴리는 유대의 변방 지역으로써, 그곳 출신 사람들은 국제적이고 세련된 예루살렘 사람들이 볼 때 너무도 촌스럽고 미덥지 못했다. 그들 중 누구도 큰 조직을 이끌 만한 기반과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가 교회 앞에 있었다. 회심한 3천여 명은 이제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준비해서 예루살렘을 방문한 순례자에 불과했다. 예루살렘에서 평생 먹고 살기 위해 온 이주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록 성령을 체험하기는 했지만 교회를 일으키고 유지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실제적인 생활의 준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도들의 눈에 그들은 아직 미숙한 신앙인에 불과했고, 복음을 전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아 보였다. 이대로 그들을 보낸다면 그들의 세례는 일회성의 사건으로 끝나 버릴 처지였다. 현실적으로 수천 명이 모여서 기도하고 교육받을 장소는 더더욱 없었다. 이제 12사도들이 교회에 처음으로 닥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살펴보자.
그들이 내린 첫 번째 결정은 예루살렘에 머무르라고 하신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교회를 위한 공간을 준비해주셨다. 성전 건물 뒤에는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뜰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종교적 체험과 결단이 확실하다고 해도 3천여 명의 회심자들이 당장 자신들의 가정과 직장과 고향을 버리고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이야기였다. 비록 일요일에 갑작스럽게 성령체험을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단지 하루 만에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 일자리와 모든 소유를 다 버릴 수 있겠는가? 그들은 사도였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궁핍해지는 생활문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문제를 교회 안에 끌어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복음 전파였고 부차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몫이었다. 이미 120여 명의 제자들과 함께 성령이 인도하시는 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에 실생활 문제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맡기는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120여 명의 제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자신의 기쁜 삶을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위대한 계획이었다. 성령의 역사는 일시적인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120여 명의 삶을 통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삶 자체의 변화였던 것이다.
제 5장 D-day
사도들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성전 뒤뜰 솔로몬 행각에는 기쁨에 가득 찬 3천여 명이 운집해서 사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도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하여 원자폭탄과 같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복음을 사람들에게 부어 주셨다. 설교 마지막 즈음에, 사도들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함께 예루살렘에 남아서 주님을 따르자고 제안했다. 사도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했다. 그 말을 듣자 모인 사람들의 눈빛에는 이 땅에 펼쳐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렬한 갈구가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놀랍게도 사도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모두 함께 남기로 한 듯 커다란 환호를 보냈다. 이로써 3천명의 사역자들이 첫 교회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비록 그들이 남아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는 여전히 커다란 문제였지만 그 순간 그런 골치 아픈 것들을 생각하기에 그들은 너무도 감격스러운 은혜를 체험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예비해 놓으신 삶의 방편들을 사도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그동안 사람들의 결단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해결되었다. 3천 명의 회심자들 가운데 예루살렘에 이미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집과 일터를 다른 신앙인들을 위해 내어 놓기로 작정했다. 먹을 것도, 잠잘 곳도, 그리고 일할 곳도 없는 3천 명의 사람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진 것은 복음과 그것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은혜로운 만남이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혁명적인 삶의 태도는 다른 일반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세상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교회라는 공동체의 속성을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분명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곧 모든 것을 잃는 것으로 보여 졌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동안 누구도 감히 요구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결단을 내리도록 사람들을 감동시키셨다. 첫 교회는 그 정도의 순종이 전제되고서야 세워지고 유지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순종의 도를 처음 가르치신 이후로 한 번도 그 명령을 취소하거나 바꾸신 적이 없다. 현대 기독교는 다시금 그 순종을 몸소 보여 줄 때가 되었다. 이러한 혁명적 삶속에는 이미 하나님의 놀라운 세 가지 계획이 실행되고 있었다. 첫째 하나님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초대교인들이 대면한 힘든 상황을 이용하여 기존의 모든 사회질서와 관습들을 깨뜨려 버리셨다. 둘째 교회의 급진적인 공동체 생활은 기존의 종교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모든 교회 생활의 기준들을 설정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했다. 셋째 하나님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통해 신앙인들이 따라야할 ‘교회생활’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그들이 교회로써 처음 갖춘 요소는 12사도들, 3천여 명의 회중, 커다란 행각, 수많은 집들과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쁨과 희생뿐이었다. 이것들이 교회를 만들었다. 주님은 그 안에서 살아계셨고 사람들은 그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제 6장 교회, 태어나다.
사도들이 묵고 있던 집 뜰에 아침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교회의 생명이 잉태되는 날’이다 거실이며 방이며 온 집안 가득히 거룩한 삶의 기운이 퍼지고 있다. 비록 그들은 남의 집에 얹혀사는 입장이지만 환한 웃음과 공손함으로 서로에게 위로와 기쁨의 이야기들을 건넨다. 그들은 더 이상 손님이나 불청객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주인이다. 그들은 더 이상 손님이나 불청객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주인이다. 그들은 자신의 집에서보다 더 부지런하게 살아가면서 공동체를 위해 준비된 삶의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함께 길을 갈때마다 늘 주님을 찬양하였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마치 한 가족처럼 인사를 나눈다. 때때로 그들은 웃음분 아니라 눈물의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때는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죄와 아픔 고통과 좌절의 날들을 되새기며 말씀을 통해 그 생활로부터 단절되는 것을 경험한다.
그들은 주중에도 언제든지 모이기만 하면 예배와 기도를 드렸다. 지금처럼 주일 낮 예배, 저역예배, 수요 집회 등과 같은 이름은 있지도 않았다. 내일 다음 주 다음 달이란 그들에게 의미가 없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다워질 때 시간적인 틀은 교회에게 너무도 답답한 장애로 느껴진다. 교회의 생명력은 곧 회중의 삶의 역동성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들이 받은 교육은 무엇일가? 안타깝게도 성경 어느 곳에도 그들이 선교사가 되기 위해 특별한 제자 교육이나 선교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주를 따르는 사람은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그들을 준비하셨을까? 그들은 오직 교회 생활에 있어서 인내하고 헌신함으로써 주님의 모든 사역을 감당할만한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초대교회에서 가정교회모임은 은밀하지만 강력한 비밀이 숨겨진 곳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가정교회모임은 교회를 가장 독보적이고 특별하며 경이롭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가정교회모임은 교회를 가장 독보적이고 특별하며 경이롭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가정교회에슨 하나님이 원하셨던 공동체의 원형이 숨어있었고, 또한 거기에는 유명한 인도자나 능력있는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신앙인들은 누구나 한 개 이상의 교회모임에 속해 있었고 그 모임들은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아주 자연스러운 공동체였다. 가정 교회는 한두 사람의 리더에 의해 조직되고 운영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매우 자유롭게 순종적인 모습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신기하게도 섬김과 순종은 있어도 사람사이의 상하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정교회는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공동체였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경배의 대상이 되었다.
제 7장 21세기 오순절에 대한 상상
만약 21세기에 오순절 사건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신은 축제를 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다. 당신은 오래 전에 이곳에서 살았지만 외국으로 이민을 간지 매우 오래됐다. 영어를 할 줄은 알지만 완벽하지는 않다. 앞으로 만나게 될 열두 사람 역시 당신처럼 이 도시에 잠깐 들르러 왔다. 그들은 이 도시 근처의 외진 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국제회의와 축제가 시작되기 바로 전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셨다. 오순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당신은 바로 그 사건을 지켜보고 있는 군중 중 한 사람이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고, 그 설교에 감동을 받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회심한 사람들은 당신을 포함해서 3천여 명에 이른다. 당신은 그 증거로 물에 가서 세례도 받았다. 그 다음날 당신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이 도시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여기에 남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경험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신앙을 지킬 것인가?
그러던 중 베드로가 다시 나타나서 확신에 찬 권고를 한다. “모두들 여기에 남읍시다!” 남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사소한 문제들이 몇 개 남았다. 어디서 자고, 어떻게 끼니를 해결할 것인가? 곧 당신은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회심자를 만나 그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된다. 그 집은 그저 평범한 방 3개짜리 집이다. 그곳에 초대된 사람은 당신만이 아니었다. 당신과 같이 회심하고 이 도시에 남기로 결심한 다른 50여 명도 같이 초대되었다. 그 집에 들어서자 발 디딜 틈이 없이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당신은 침낭이 있었기 때문에 뒤뜰에서 잠을 자겠다고 자청했다. 원래 그 집에 살던 가족을 포함한 60여 명의 식사가 조그만 부엌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아무도 음식으로 인해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은 먹고 자는 문제보다는 그리스도를 알게 된 기쁨이 훨씬 더 컸다.
과연 복음이 얼마나 강하기에 인간성 자체를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교회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델로 제시해 주셨다. 하나님은 또한 교회에게 경제적인 전통과 아이디어까지 보여 주셨다. 주님은 교회를 통해 사회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시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향한 섭리와 계획을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과 더불어 시작하신다. 이제 우리는 다시 1세기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순절이 며칠 지난 후,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바로 치유의 기적이다.
이 새로운 발견은 오순절 사건에 이어, 교회의 또 다른 발전된 역사를 펼쳐 보여 주었다.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도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좀더 획기적이고, 기적적인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예루살렘의 모습은 후에 이방교회들이 복음을 믿던 태도와 비교해 볼 때 매우 두드러진다.
제 8장 첫 4년을 지내며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각은 오후 3시경 기도모임을 드리기 위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성전으로 모이고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도 그중에 있었다. 가는 도중 베드로는 거기 앉아있는 거지를 보았다. 무언가 마음속에 일어나는 영적인 감동이 느껴져 발걸음을 멈추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은 이 거지를 다 알고 있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그 불쌍한 영혼이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감동이 일어났다. 베드로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했다. 거지는 몸을 이리저리로 움직이다가 마침내 자기 힘으로 일어났다. 사도들은 사건이 있은 후,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성전으로 들어갔고 늘 하던 대로 말씀을 전했다. 치유를 받은 거지 역시, 성전으로 들어갔다. 물론 여전히 기뻐 뛰어다니고 있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한편 치유 받은 거지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회복된 모습을 보여주며 기뻐하고 있었다. 이 치유사건은 당시 성전을 책임지던 몇몇 유대교 지도자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이 치유 사건은 초기 교회가 두 번째 도약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성전의 관리들은 밤늦게까지 기다렸다가 회심자들의 행렬이 끝난 후, 두 사도를 붙잡는데 성공했다. 두 사도는 제사장들 앞에서 온갖 위협과 협박을 당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진 후 베드로와 요한은 즉시 사람들을 모아놓고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했다. 이제 더 강력하고 새로운 복음 선포의 물결이 예루살렘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교회에는 다시 세 번째 회심자들의 모임이 일어났다. 새로운 회심자들 중에 바나바라는 부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내 놓았다. 이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매우 큰 도전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아나니아라 하는 남자가 변칙적인 방법을 통해 이기심을 채우려 했다. 그는 경제구조를 잘 알고 악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도들을 속일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가 자신의 재물의 일부를 사도들 앞에 내어놓는 순간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죄를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해버렸다.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성령을 속였던 아나니아부부의 죽음은 초대교회의 네 번째 회심운동을 일으켰다. 치유의 역사는 사도들손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상사가 되었고 이 역사 앞에서 아무도 저항할 수 없었다. 이런 번번한 치유의 이적들은 다시 다섯 번째 회심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 운동역시 교회의 엄청난 성장을 가져왔다. 예루살렘교회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과정을 겪으며 성장했다.
제 9장 첫 번째 갈등
2만여 명의 회중들이 주위 유대 지역으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로 모여들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비록 규모와 믿음의 역동성에 있어서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지만, 그와 동시에 내적인 문제들도 함께 커갔다. 그리고 교회의 문제는 여러모로 복잡하고 다양했다. 그러나 교회는 위기의 순간들을 공동체 생활로 기적같이 극복해 나갔다.
초대교회가 생겨난 후 이어난 수많은 사건들로 인해 12사도는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산헤드린 공의원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흥종교가 도시를 장악해 나가는 모습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다. 12사도가 이끄는 교회라는 종교집단은 이제 기존의 종교체제와 조직을 뒤흔들만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12사도는 재판장으로 끌려갔다. 제도와 전통에 대한 사도들의 강력한 저항을 보면서 사형을 언도할 참이었다. 그런데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재판을 비공개적으로 할 것을 요구했고 조심스레 현실적인 충고를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교리적 이단이라면 이러다 말 것이라며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결국 그들은 39번의 채찍질을 당하고 풀려났다. 당시교회는 작게는 5천명 크게는 2만 명정도가 모였다. 첫 박해를 겪으면서 교회는 생겨난 지 5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교회가 당했던 첫번째 고난이 외부로부터의 박해였다면 이제 앞으로 당할 더 심각한 고난은 교회 내부로부터의 문제였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유대교 제사장들이 회심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 있는 쾌거였지만, 유대교의 입장에서는 가장 모멸스러운 재난이엇다. 이러한 끔찍한 사실이 산헤드린의 의원들의 귀에 들어가자, 그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즉각적으로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계획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본격적인 박해의 시작은 앞서 세운 일곱사람들의 역할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시말하면, 그들의 음식을 나누는 역할은 실제로 그리 오래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제 가장 큰 격동기를 맞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첫 번째 거대한 박해가 닥쳐올 기운이 점점 무르익어가고 잇었다. 이 종교적 박해는 사회적으로도 여건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디베리우스는 23년간 통치했던 로마 황제의 자리에서 사라지고, 가이우스 카리굴라가 그 자리에 새황제로 앉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두 기독교의 영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두 로마 황제의 업적과 명성을 다 합쳐도 모자랄 만한 위대한 일을 역사에 남겼다. 이때가 기원후 37년이었다.
제 10장 일곱 사람들
2만여 명의 회중들이 주위 유대 지역으로부터 예루살렘 교회로 모여 들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비록 규모와 믿음의 역동성에 있어서는 성장해갔지만, 그와 동시에 내적 문제들도 함께 생겨났다. 그러나 교회는 위기의 순간들을 공동체 생활로 기적같이 극복해 나갔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단지 몇 사람의 도움으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누군가가 일 일만을 전담해서 책임을 져야 했다. 그들이 재물을 하나님의 은혜로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는 관리 개념은 더 이상 효과적인 나눔의 생활을 보장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자발적으로 나가서 일을 했다. 그러나 일을 하다가 힘든 상황들을 만나게 되면, 그 일을 그만 두고 교회로 돌아와 숨어 버리기도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사회적 책임성이 희박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의 반복은 교회를 위해서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교회의 사도들은 이런 현상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책임감 없는 회중들을 올바로 다스리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혼돈과 불평의 상황은 점점 더 극으로 치닫고, 어느 새 사도들의 손을 떠나 더 이상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는 공동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예루살렘 밖에서 들어온 몇몇 과부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음식의 양을 유심히 남들과 비교해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보다 자신들이 받는 음식의 양이 적어 보였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지역의 편파성에 대한 의심까지도 외부 사람들의 불평을 부추겼다. 교회의 첫 번째 내적인 갈등이 밖으로 표출되었을 때, 사도들이 문제의 해결자로 함께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도들은 음식으로 인한 불평을 듣자마자 곧 문제 해결의 과정을 밟아 나갔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사람들이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모든 음식을 공평히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교회의 규모가 너무 커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도들은 구제 사역만을 전담해서 책임지는 사람들을 뽑기로 결정했다. 이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한번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 일을 담당할 사람이 갖추어야 할 몇 가지 자격은 다음과 같다.
이제 전문적으로 특정한 일을 감당할 사람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오순절 사건 이후 7년 동안 교회에는 오직 사도들과 2만 명의 회중들만 있었지만, 이제는 또 다른 세부적인 역할을 맡을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야 음식을 배분하는 일을 할 때 사람들의 불평은 사라졌다. 좀 더 안정된 조직으로 돌아옴으로써 교회는 더 큰 부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제는 성전의 제사장들이 회심하기 시작했다.
제 11장 두 위대한 인물
1세기 기독교 역사에는 두 명의 위대한 인물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 하게 될 상황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충돌은 교회를 무너뜨릴 만큼의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역사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기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누구인가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그중 한 사람은 앞에 언급한 ‘일곱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이라는 청년이었고 또 다른 청년은 사울이라는 사람으로서 비 기독교인이었다.
먼저 스데반을 보자. 스데반은 누구이며 어떤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이는 흥미로운 질문이다. 우선 스데반은 예루살렘 출신이 아니다. 그는 비록 유대인이기는 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항상 이방인 취급을 받아왔다. 그는 원래 유대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며 주로 로마와 그리스 문화에서 교육받고 자라났다. 스데반은 어떤 과정을 통하여 교인이 되었을까?
첫 번째 과정은 그가 수천 명의 사람들과 더불어 세례를 받게 된 일이었다. 두 번째 과정은 세례이후 그는 예루살렘에 머물기 위해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친구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했다. 그는 무일푼으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 세 번째 과정은 교회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스데반은 하늘나라 복음에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기에 그가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곤 시간과 힘과 마음뿐이었다. 네 번째 과정은 그가 수십 명의 다른 회심자들과 함께 어느 가정에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그는 신앙의 공동체 생활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경험하고 실현하는 기회를 얻었다. 스데반은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신이 그리스도의 첫 회심자들 속에 속한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날마다 성전근처에 가서 사도들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이에 열중했다. 수천 명의 군중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빛났고 그의 깨달음과 결단은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직 젊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큰일을 맡지는 못했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그에게 매우 잘 된 일이다. 한편으로는 자신도 나가서 설교를 하고 남들을 이끄는 사역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스데반은 4년간 그렇게 아무 의무감 없이 지내면서 오히려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를 잘 지켜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은 현대교회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준다. 많은 현재 젊은이들이 교회 사역으로 지쳐가고 많은 일로 인해 그들의 삶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결단과 훈련의 시간이 먼저 필요할지도 모른다. 스데반이 교회에 혜성과 같이 나타났을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들은 그 주인공이 스데반이라는 사실에 놀랐을까 아니면 당연히 받아들였을까? 회중은 스데반을 교회의 지도자로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스데반과 함께 먹고 자며 수년간을 지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스데반을 잘 알고 있었으며 존경하고 따랐던 사람들이다.
제 12장 대논쟁
스데반은 예루살렘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제 곧 토론이 열리는 장소에 도착할 것이다.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대변할 기회가 스데반에게 주어셨다 그는 건물을 들어서면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몇 개의 원주들이 둥그런 방안을 받치고 있었고, 가운데 빈 공강에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옆 발코니에는 여자들과 아이들을 위한 자리들이 마련되어 있었고, 방의 앞쪽에는 탁자가 놓여있었으며, 그위에는 히브리 두루마리들이 놓여 있었다.
그는 지금 리버틴 회당안에 들어선 것이다. 이 회당은 외국에 사는 몇몇 부자 유대인들이 돈을 모아서 지은 건물이었다. 이 회당은 주로 예루살렘을 방문한 외국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 유명했다.
스데반과 다른 헬라유대인들과의 논쟁은 어떻게 해서 성사되었을가? 그 시작은 스데반이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하고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이적을 행함으로서 촉발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데반의 사역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지만 골수 유대인들은 그의 행동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반감을 갖기도 했다. 결국 그들은 종교적인 교리논쟁으로 스데반의 행동을 막아보려고 했다.
이제 논쟁은 시작됐다. 사울은 열정을 가졌고 스데반은 권능을 가졌다. 사울은 지성과 논리와 합리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반면 스데반은 지혜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사울이 율법에 해박했다면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었다. 사울은 전통과 법에 호소하고 스데반은 성령과 은혜에 자신을 맡겼다. 사울을 이세상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스데반은 하나님의 주신 ‘새 생명’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격렬한 논쟁이 마지막으로 치달을 무렵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신성모독이오!’‘여호와 이름을 더럽히는 자요!’
이미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결정한 듯 보였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은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고 스데반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몇몇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달려가 스데반을 붙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다. 회당 밖에 있던 사람들도 끌려 나오는 스데반을 보며 한 목소리로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미 그곳의 사람들은 각본에 있는 대로 움직이는 듯했다. 그들은 스데반을 끌고 산헤드린으로 향했다. 스데반은 공식적으로 하나님과 모세의 율법을 더럽힌 ‘신성모독죄’의 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종교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제 13장 법정에 선 71명
스데반을 처리할 방은 성전의 마당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예수님이 8년 전에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 베드로와 요한도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 오늘은 스데반이 이곳에 서게 되었다. 그 역시 하나님과 모세를 욕되게 하는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언도받을 것이다. 약 1년 전, 12제자들이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을 때에는 가말리엘 덕분에 즉결 처형은 면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 그때처럼 변호를 자처하거나 동정을 보내는 사람도 없으며, 더욱이나 그 때와 달리 지금은 오직 한 사람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데반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유대에서 가장 강력했던 종교제도에 도전한 인물이 된 것이다. 이 유대 종교제도는 그 동안 나이와 인종 그리고 직업과 상관없이 유대 종교법과 관습에 도전한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가차 없이 처단을 해 왔다.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고, 스데반에 대한 고소장이 읽혀졌다. 그리고는 그를 고소한 사람들과 증인들이 나와서 한 사람씩 스데반의 죄를 증언하였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한 내용은 스데반이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공적인 장소에서 설교했다는 것이었다. 오랜 관습에 의하면, 피소를 받은 사람이 고소 내용에 대해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직접 물었다. “지금까지의 고소 내용들이 사실인가?”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스데반의 입술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데반의 얼굴이 마치 천사의 얼굴처럼 환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기도를 하더니 마치 하늘의 권세를 받은 사람처럼 너무도 담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방안에 모인 어느 누구도 도망갈 수 없을 만큼 힘이 있고 설득력 있는 설교가 스데반의 입에서 울려 퍼졌다. 사실 사람들은 그의 유창하고 담대한 복음 앞에 매우 놀라고 있었다. 그는 성서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고, 해박한 지식과 빈틈없는 논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변호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설명하면서 다시금 복음의 핵심적 주제를 언급하였다. 스데반은 지체 없이 과거의 역사에서 현재의 사건들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산헤드린의 거부와 핍박에 관한 것이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순식간에 질책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스데반이 이제는 재판관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을 정죄하고 있었다. 그는 산헤드린을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를 살해한 살인집단으로 결론 맺었다. 이제 그들이 바라는 최후의 선택은 스데반의 죽음뿐이었다. 첫 번째로 돌을 던질 증인이 웃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는 벗은 옷을 지켜 줄 사람을 찾다가, 자기 옆에 서 있던 사울과 눈이 마주쳤다. 사울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옷을 맡아 주겠다고 했다. 첫 번째 증인이 큰 돌을 들고 스데반의 머리를 내려치기 위해 다가갔다. 교회 역사에서 스데반은 첫 번째 순교자가 되었다.
제 14장 눈물의 애가
죽음의 처형장은 텅 비어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몇몇 사람들이 처형장으로 황급히 달려왔다. 그들은 공포에 질린 듯 한 모습으로 빈곳을 둘러보고는 버려진 시체를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구덩이로 내려고 그 시신을 고이 들어올렸다. 그들의 눈에는 뜨거운 슬픔과 눈물이 솟구쳐 흘러내렸다. 결국 스데반은 오순절의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거룩하고 존경스러운 상징이 된 것이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독특한 조건들 중에서도 우리가 특별히 관심 있게 보아야 할 부분이 사도의 존재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건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했던 그들의 노력이다.
스데반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는 유리한 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그에게는 2만 명의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던 스데반에게는 2만여 명의 동역자들이 있었다. 그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하든 스데반은 그들과 함께 주님을 이야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 이는 현재 우리가 가질 수 없는 조건이다. 교회생활이 일상이 아니고 삶의 작은 부분인 우리가 어떻게 스데반의 신앙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다니는 곳이 아니라 곧 그들 자신이었다. 그들 삶이 순간순간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 자체였다. 그들은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스데반이 젊었을 때부터 그 안에 숨 쉬고 보아온 삶의 현장이 바로 이런 모습의 교회였다.
주님은 스데반에게 주신 것들을 우리에게도 주길 원하신다. 사도들의 존재와 교회 생활을 통해 스데반은 위대한 순교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엄청난 신앙적 자산은 교회역사에 있어서 또 다른 신앙인들이 무수히 생겨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교회의 가능성이자 소망이었던 스데반은 순교하였다. 그 순간 마치 교회의 소망이 무너져버린 듯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이제 교회는 마치 스데반이 땅에 묻힌 듯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님은 또 다른 사역자를 주목하고 계셨고 더 큰 복음의 사역을 위해 스데반의 사건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스데반이 처형된 그날은 기독교역사가 피로 물든 날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기독교역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벌어진 날이 아니라 박해의 시작일 뿐이었다.
제 15장 박해
스데반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스데반의 죽음을 무마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위해서 적극적인 대책들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산헤드린의 모임은 다시 활발해졌다.
산헤드린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들이기 위해서 용감하게 집집마다 돌아다닐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집에 들어가 민첩하게 사람들을 끌고 나올 열정과 힘이 필요했다. 이일은 결코 여러모로 쉽지않은 일이었다. 그런 사람을 두루 물색해보았지만 사울만한 인물이 없었다. 사울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열정이나 능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다. 사울이 그 일에 지목되고 흔쾌히 수락을 하지 사울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도시의 거리와 집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수백,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길거리로 끌려나왔다. 그리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
제자들은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라는 인정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수야말로 메시아였고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야 말로 신성모독임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부인만 하면 곧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인하지 않는다면 곧장 끌려 나가서 모진 매와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게되었다. 아니면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무서운 상활 속에서도 여전히 잠잠히 있었다.
제자들의 마지막 증언이 끝나자 사울은 재빨리 장로들에게서 재판결과를 받아 형벌을 집행했다. ‘39대의 태형에 감금’이 가장 흔한 형량이었다. 이는 돌로 쳐 죽이는 바로 전 단계의 벌로서 나름대로 자비를 베푸는 형식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가해졌다. 이 벌을 받는 것은 유대인으로서 가장 치욕적이며 유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정상인의 삶을 살수 없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기존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그 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벌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이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태도였다. 제자들은 그런 고통을 잘 감내했다.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자기 몸에 함께 했다는 것을 너무나도 큰 영광으로 받아들였다.
예루살렘교회는 이렇게 서서히 무너져 가는것만 같았다. 도시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간단히 짐을 꾸려 조용히 도시를 떠나기 시작했다. 언제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그들은 서로 믿음 안에서 다시 만날 약속을 하며 총총히 도시를 빠져나갔다. 수일동안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난 사람들의 수는 거의 2만 명에 달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제 16장 100개의 새로운 교회들
예루살렘으로부터 200여개의 다른 도시들로 나가는 길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스데반이 순교한 그날부터 일종의 종교적 피난길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는 것은 결코 자신들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신 계획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들은 무작정 처음 도착한 도시에 머무를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자신들이 갈수 있는 한, 먼 곳으로 갈 계획을 세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계획들을 가지고 각 도시로 퍼져나갔다. 다른 도시나 길가에서 만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기도로 서로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다. 그들은 이런 상황에서야 말로 진정한 신앙의 위로가 필요했다. 그들은 서로 만나서 그동안 당했던 부당한 대우와 고통 그리고 고문과 같은 체험들을 나누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몸소 경험함으로써 교회생활의 본질을 알 수 있다. 교회생할의 본질이란 곧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일단 교회생활의 본질을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삶의 외적인 조건들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예루살렘을 떠난 제자들은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러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서로를 위호하고 격려하며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강력하고 새로운 리더십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박해와 흩어짐을 통해 유대 땅의 복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그 당시 유대 곳곳에서 어떤 복음의 역사들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복음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어렴풋이 상상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유대 땅에서 복음 전하는 일은 우연하고 즉각적인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이제 복음은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문 신학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평범한 그리스도인 여행객이나 피난민에 의해 도시의 곳곳에 전해졌다. 이와 유사한 상황들은 각 도시에서 일어났다. 예루살렘을 탈출한 다른 제자들 역시 각자의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복음 전파 사역들을 풍문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족한 사역을 연구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던 가정교회가 이제는 박해를 계기로 유대의 각 지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가정교회의 직접적인 체험자들이었기 때문에 가정교회를 세우고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그동안 자신들이 발견한 미비한 점을 보완하여 더 발전적이고 효과적인 가정교회들을 만들어 나갔다. 제자들은 도시의 적절한 인원에 맞춰 계속 사역을 할 사람과 다른 도시로 떠날 사람들을 정했다. 그들은 가정교회가 아직도 세워지지 않은 곳이 있다면, 어느 곳이든지 즉시 발걸음을 옮겼다.
제 17장 두 번째 스데반
예루살렘교회에는 빌립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스데반과 비슷한 신앙의 경험을 했다. 스데반은 교회의 새로운 장을 연 장본인이었지만 길지 않은 사역 끝에 결국 순교하고 말았다. 그러나 스데반은 살아서보다 죽어서 교회와 기독교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에 반해 빌립은 스데반과 달리 살아서 자신의 임무를 이어나간 위대한 사역자였다. 기독교역사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각각의 사람들에게 서로 다른 선교의 역할을 주셨음이 틀림없다. 빌립 역시 스데반처럼 교회 역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이자 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써낸 인물이다. 빌립은 스데반의 순교에 큰 충격을 받았다. 택함을 받은 일곱 사람들 중에서 가장 귀하고 친했던 신앙의 동역자를 잃은 슬픔은 빌립으로 하여금 큰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빌립은 이러한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을 패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빌립은 그것을 박해라고 여기기보다는 새로운 신앙의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려는 비전을 마음속에 서서히 품기 시작했다.
빌립은 예루살렘을 떠나 북쪽 지역으로 향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사마리아라는 큰 도시였다. 빌립은 호기심에 가득 찬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빌립의 설교는 기존의 모든 관습과 전통을 통째로 뒤흔드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빌립의 메시지와 그의 권능은 사마리아를 뒤흔들리게 충분했다. 그가 선포한 말씀에 의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존재를 서서히 인식하며 주님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빌립은 세상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그들에게 교회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징표로 세례를 주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유대의 각 도시들은 안수를 받기 위해 사도들을 자주 초청하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사도들의 상징적 의미가 그들의 신앙생활에 큰 힘이 되었겠지만 사도들의 안수자체가 절대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빌립과 베드로 그리고 요한의 합동사역으로 인해 사마리아의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강력한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 빌립은 그렇게 사마리아 교회를 세웠다. 이제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또다시 교회를 세우는 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사마리아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예루살렘의 남쪽에 위치한 황량한 가자지방으로 갔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날마다 온 유대 당에 선포되고 있었고 그 지역은 거의 200여 군데가 넘었다. 스데반의 죽음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4,5년 동안 온 유대가 복음의 열매를 맺는 기적이 일어났다.
제 18장 교회생활 유대문화
유대교회 사람들은 어떤 생활들을 했는지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 역시도 예루살렘교회와 유사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일단 시작부터 유대교회는 예루살렘교회의 전철을 밟았다. 그러나 유대교회는 예루살렘교회와 달리 제자들이 어떻게 그 곤경을 이겨나가야 할지를 잘 알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성령의 능력은 예루살렘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의 각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각 지역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함께 신앙생활을 할 사람들끼리 모여 각자 가지고 있던 소유를 모았다.
전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이 문제는 예루살렘 교회의 경우와 사뭇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도들로부터 받았던 복음과 말씀을 되새겨서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모자란 말씀의 내용들을 보충하고 함께 기도하며 더 절실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갔다. 또한 유대교회의 전도방식은 예후살렘 교회와 구별되었다. 예루살렘에서는 주로 기적과 이적을 통해 교회 공동체를 성장시켜 왔지만 유대에서는 이적보다는 주로 아름다운 공동체 생활을 통해 교회가 성장해 나갔다.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때마다 늘 신선한 방법으로 역사하셨다. 유대에서의 복음사역 역시 하나님의 새로운 일이자 듯이 숨어있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증인들을 대규모로 흩으심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급진적인 전도 결과를 얻으셨다.
그렇다면 유대교의 모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대교회의 모임들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과 거이 같았다. 모임은 항상 기쁨과 찬양으로 뜨거웠다. 예루살렘교회와 유대교회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고향을 서로 달랐어도 모두가 유대인들이었으며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들의 모임에는 고정적인 지도자가 없었다. 누구도 교회 모임을 혼자서 전적으로 관장하지 않았다. 유대의 가정교회는 그곳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나갔다.
하나님은 교회가 그동안 뿌리 깊게 내려온 유대의 율법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수천 년간 내려온 그들의 관습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를 기대하는것은 무리였다. 그들의 몸속에는 율법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들의 마음은 유대 관습으로 물들어 있었다. 완전한 파괴는 오히려 모든 삶의 터전을 흔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요약을 해보자 처음으로 생겨난 후 8년간의 역사는 예루살렘이라는 한 도시에 12사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후 4년동안 교회는 각 유대 지역에 150여개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었고 12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빌립과 같은 새로운 기독교 지도자들의 역할과 책임은 매우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제 19장 다시 태어난 예루살렘교회
사울은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하룻밤사이에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살렘을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린 것이다. 이는 사울에게 아주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또한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사울은 자신의 모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훌쩍 떠나버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사울과 산헤드린은 처음에는 그리스도인들의 증발이 곧바로 기독교의 몰락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렇게 사라진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곳에 가서 다시 교회를 세우고 신앙을 유지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울의 예상은 곧 이어 들려오는 소식들을 접하면서 산산조각 났다.
예루살렘을 빠져나간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의 각 지역에서 교회를 세우고 멀리까지는 다마스커스에 이르러 기독교를 전하고 다닌다니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사울은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사울은 산헤드린으로 달려가서 공식적인 허가를 받고 다마스커스로 달려갔다.
산헤드린은 사울에게 큰 기대를 걸고 다마스커스로 보냈지만 그후, 사울로부터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 어디론가 사라진 것이다. 유대교지도자들은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 가장 열정적이고 능력 있던 사울이 사라진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은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사울이 사라진 후, 기독교에 대한 산헤드린의 박해가 완전히 종결은 되지 않았다. 간헐적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은 공식적으로 처형되거나 중형을 받았다. 그동안 잠잠했던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숨죽여 왔던 가정 교회들이 어디선가 포교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여전히 큰 위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옛날처럼 다시 한번 크게 박해를하면 다 도망갈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에 그리스도인들은 나약한 겁쟁이들이었다.
언제 얼마만큼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예루살렘 교회는 임시로 피했던 제자들의 귀환으로 다시 힘을 얻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제자들중에 바나바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원후 41년이었고, 교회가 스스로 자생하는 힘을 비축한 시기였다. 바나바는 이때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제 20장 미심쩍은 회심자
3년 전, 교회를 말살하기위해 가장 열심히 뛰어다녔던 그 사울이 이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나타났다. 바나바는 바울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나바는 바울을 찾아가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울은 지난 수년 동안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을 상세하게 말했다. 그에게는 아무런 거직이나 허풍도 없었다. 바울은 분명히 회심을 했고, 지금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그 박해자 바울이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바울의 회심이 확실함을 보고 그에게 베드로와의 만남도 알선해 주었다. 베드로는 바울의 회심간증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바울은 분명 그날 너무도 죄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일을 잘 아는 사람들 앞에 선다는 일이 그에게는 큰 형벌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토록 핍박했던 교회에 자신이 들어와 그들 앞에서 간증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한편으로는 너무도 감격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바울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라도 꼭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그동안 저지른 일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싶었고, 다른 하나는 자신과 같은 헬라-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바울은 이제다시 리버틴 회장으로 용기를 내서 걸어갔다. 바울이 그 자리에 서기까지 산헤드린 사람들과 열성 유대인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바울을 지켜보았다.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자신들을 대적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바울의 변론이 끝나자 유대인들은 다시 바울을 잡아들이고 그를 제거할 계획을 모의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가이사라로 갔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2주밖에 머무르지 못했기 때문에 베드로 이외에 다른 사도들이나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바울은 29살에 주님을 만나 회심을 하였고 그 후, 3년간 사라졌다가 잠시 예루살렘에 나타났지만 박해를 피해 어디론가 또 다시 살아졌다. 이제도 3년간의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다. 예루살렘과 유대지역의 박해가 잠잠해져가는 때였다. 이제야 마침내 유대 땅에 평화가 찾아왔다.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갈릴리의 교회들은 박해의 고통으로부터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제 21장 초대받을 수 없는 손님
여행을 위해 간단이 짐을 싼 베드로는 가족들과 작별을 한 후 예루살렘을 빠져나왔다. 그는 유대의 몇몇 도시 들을 방문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가 욥바에 도착했을 때 다비다가 죽었다는 소직을 접했다. 욥바의 크리스찬들로부터 요청을 받고 다비다의 집으로 들어간 베드로는 시신 옆에 무릅을 꿇고 명령을 했다.“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때에 분명 죽었던 다비다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사도가 죽은 자를 살리는 첫 사건이었다. 복음의 기적은 결코 마술적인 초 능려이 아니다. 복음의 능력은 오랜 기간의 사역과 사도로서의 권위와 준비가 필요하다.
이와 동시에 가이사랴에도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고넬료라는 로마의 고위급 군인이 있었다. 그는 비록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기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천사로부터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해오라는 사인을 받게 되었다. 고넬료가 환상을 보고 있는 그 시점에 욥바에 있는 베드로도 환상을 보았다. 그 환상은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베드로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환상이 멈추자 베드로는 오랫동안 그곳에 앉아서 자신이본 환상을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그러자 주의 영이 그에게 속삭였다.“세 사람이 찾아올 것이다. 그들과 동행하라”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정말로 세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 고넬료 집으로 갔다. 그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고넬료는 이미 이웃과 친구들까지 초대해서 만찬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베드로는 준비된 규모에 놀랐다. 그는 살면서 이렇게 많은 이방인들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베드로에게 존경을 표하며 예수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 해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앉아서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도 놀란 것은 설교를 마치고도 전에 할레도 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이다. 이는 제 2의 오순절 사건과 같았다. 그대상이 이방인들이라는 것만 다를뿐 이었다. 기원후41년 그날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방인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날이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지자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베드로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따져 보려고 했다. 그들은 베드로고 이방인들과 어울려 식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매우 큰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사람들에게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성령의 이정에 대한 가정 앞에 그 일을 문제 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이적들을 더욱 찬양하게 되었다.
제 22장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안디옥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의 인구는 50만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아주 먼 거리에 있었으며 헬라 문화의 중심지였다.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시리아 고원을 넘어가던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는 안디옥으로 흘러들어가는 오론테스강이 멀리 눈에 들어왔고 지중해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안디옥으로 들어온 제자들은 추측건대 10명 내외였을 것이다.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이 가진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은 넘쳐날 정도로 강렬했다. 그들이 가지고 온 복음은 이곳 안디옥에 사는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방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비록 메시아에 대한 기존 개념이 없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기 시작했다.
안디옥의 그리스도인의 수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에서 온 제자들은 유대인들에게서보다 이방인 신자들에게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들의 집에 자주 초대를 받아 설교를 하게 되었다. 사실 헬라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과 역사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것이었으며 예수가 주는 능력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다수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종적 동질감을 앞세워 자신들이 여전히 이방인들보다 우선되는 구원받은 백성임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이런 미묘한 갈등 중에서도 신앙인의 수는 나날이 늘어갔다. 어떤 사람들인 이러한 괴상한 일들이 안도옥에서 벌어진다는 소식을 안디옥을 방문해 확인하고 그것을 예루살렘에 전달을 해주었다. 그러나 안디옥은 사도들의 방문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지는 않았다.
사도들 또한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기에 갈수는 없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확인해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추천에 따라 바나바를 보내기로 했다. 바나바는 공식적인 대표로 가서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순수하게 전해지고 있는지 확인해야할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나님은 바나바를 안디옥 교회에 혼자 가게 하셨다. 그동안 낯선 지역에 제자들을 보낼 때에는 대개 둘 이상 함께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바나바는 사도도 아니었고 특별한 직책을 맡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유로웠다. 그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홀로 먼 길을 떠났다. 이때는 이미 오순절 이후 13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유대의 교회들도 벌써 5년 이상의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제 서구의 운명이 지금 예루살렘을 떠나는 바나바의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 23장 하나님의 두 번째 사역의 시작.
안디옥 사람들은 예수살렘에서 온 바나바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바나바에게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앞 다투어 간증했다. 바나바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이방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나바는 드디어 안디옥 교회의 공식 모임에 초대되어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너무 떨리고 두려웠지만, 한편으로는 큰 호기심도 있었다.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너무도 다른 문화적 특징을 가진 그들이 한번도 보지 못한 나사렛 예수를 믿다니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일수 있다니
바나바는 이방인 교회로 들어갔다. 그들은 좀 지저분했고 소란스러웠다. 복장은 누추하고 단정하지 못했고 행동도 거칠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바나바의 마음에는 먹구름이 몰려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나바는 마음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흘러나오고 형식이 아닌 진심으로 복음을 즐거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바나바가 앞에서 설교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는 마치 베드로가 오순절 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음으로 볻음을 전했던 역사적인 사건과 비견될 만한 일이었다. 바나바 역시 지금 이방인들에게 공식적인 첫 설교를 하게 된 것이다. 바나바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 앞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바나바는 그들앞에 얼굴을 들고 똑바로 섰다. 주님께서 이모든 일들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람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가 시작하셨다면, 분명 그가 인도하시고 마무리 해 주실 것입니다. 그는 입을 열고 말을 시작했다. 그의 말은 점점 성령의 능력으로 힘을 더해갔다. 그동안 문화적 차이에 의한 여러 인간적인 걱정과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님은 그들에게 더 강력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 주셨다 사람들은 감격했고, 호기심에 따라온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이제 안디옥교회는 기독교역사에 있어서 공식적인 교회로 등장하게 되었다.
제 24장 동역자 구함
안디옥 교회에 온 바나바는 여러 면으로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예루살렘과는 현장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는 느낌을 갖고 있었고, 매우 조심스러웠다. 왜냐하면 그가 내리는 결정과 행동은 앞으로 생겨날 이방인들 교회에 모델이 될것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나바에게 안디옥에 더 머무르도록 명령한다면, 그에게는 함께 일할 사역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누가 이 새로운 사역을 이끌것인가? 그의 생각으로는 오랜 시간동안 예루살렘과 안디옥을 오가는 여행은 급변하는 안디옥 교회의 상황으로 볼 때 불가능 해보였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이 관찰자로서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곳의 영적인 갈구는 너무도 절실했고, 누군가가 그들을 지속적으로 양육시켜야만 했다.
바나바는 몇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첫 번째 선택은 예루살렘에 편지를 보내서 한두 분의 사도들이 이곳을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선택은 자신이 직접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상세히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선택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남아서 계속 이사역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바나바는 여러 날 동안 기도한 끝에 성령의 음성을 듣고 결단을 내렸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예루살렘에 이곳의 상황을 급하게 보고하지도 않기로 했다. 사람들의 권고나 지침이 없더라도, 그는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안디옥 교회를 지켜보며 양육하길 원했다. 이생각이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반란이나 다름없는 위험한 일인 줄 알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13년간 사도드로가 함께 생활한 자신을 믿고 보낸 예루살렘 교회가 오히려 자신의 영적인 기도와 인도에 찬사를 보내 줄 수도있음을 기대해보기도 했다.
비록 인간적인 서신이 오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영적인 교류가 분명 예루살렘과 있었고, 자신의 결정 역시 이미 그들의 기도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을 수도 잇었다. 이제 현실적인 문제를 차근 차근 해결해 나갈 일만 남았다. 그러는 순간 마음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울 이었다.
바나바가 안디옥에 머무르기로 한 결단과 바울을 동역자로 택한 결정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단으로 남게 될 것이다.
제 25장 두 명의 천막 기술자들
바나바는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서 바울의 집을 찾았다. 사실 오랫동안 은둔생활을 하고 있던 바울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마치 자신의 삶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는 듯 했다. 다소에 들어간 바나바는 도시 전체가 이방신전들로 가득치 있음을 발견했다. 도시를 돌아보면서 바나바는 바울이야말로 가장 이방문화를 잘 이해하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바나바는 시장에서 천막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이유는 자신처럼 천막 기술자인 바울에 관한 소식을 얻기 위해서였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서야 마침내 바울을 만날 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고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자 바울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함께 갈 것을 승낙했다.
바울은 이미 자신이 이방인들을 위해 복음사역자가 될 것을 알고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던 터였다. 바울은 다소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갔다. 안디옥 교회의 시작단계에서 사역에 동참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복음을 선포할 귀중한 일을 감당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친히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의 사역을 준비하고 인도해 주셨다. 그들에게 준비해 주신 앞으로의 사역은 역사상 다른 것들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회의적이고 경이로운 것이었다.
바나바는 누구인가?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의 나이가 약 43살이 정도였다. 그는 유대인으로 헬라 지역인 사이프러스에서 태어나서 그곳에서 자라났다. 사이프러스는 안디옥 서부 지중해 250킬로미터 정도에 있는 아름다운 섬이었고, 당시에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는 헬라 지역의 상업 중심지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헬라어와 그 문화에 능통해 있었다.
하나님은 바나바를 세 가지 면에서 준비시키셨다. 첫째, 바나바는 교회 생활을 철저히 경험한 사람이다. 둘째,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처음부터 지켜보았던 증인이었다. 셋째, 바나바는 솔로몬 행각에서 날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직접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제 제대로 사역을 펼칠 만한 나이가 되었다. 30대 초반에 회심을 한 그는 40대 중반의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다. 반면에 바울은 바나바가 수년 동안 교회에 경험한 일들을 이제 자신이 이어서 체험해야만 했다.
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모든 사역은 이제 바나바의 지도 아래 행해질 것이다. 앞으로 4년간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모든 사역의 전부를 미리 바나바로부터 배우고 전수받게 된다. 이때가 기원 후 43년이었다.
제 26장 기근 죽음 그러나 승리
한 남자가 안디옥 교회에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아가보였고 예언자였다. 아가보는 예루살렘에서 안디옥 교회로 온 첫 번째 손님이었다. 주님은 아가보에게 앞으로 교회에 닥칠 재난을 보여주셨다. 그 재난은 앞으로 있을 흉작과 기근을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아가보의 예언이 맞다면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기근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단지 자신들이 맞이할 자연재해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교회와 유대교회들의 앞날을 걱정하였다.
안디옥 교회는 매우 철저한 계획과 신속한 준비로 예루살렘 교회를 살리는데 효과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안디옥 교회는 많은 양의 양식을 모으고 전달하는데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일을 바나바와 바울에게 맡겼다.
드디어 바나바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단지 보고를 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바나바는 사도들을 만나기가 좀 꺼림칙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안디옥 교인들의 할례문제였다. 그러나 바나바가 그렇게도 염려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예루살렘은 정치적 문제 때문에 바나바의 방문을 문제시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는 헤롯 왕이 통치하고 있었고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전에 로마 총독의 묵인 하에 그리스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왕을 통해 박해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발 빠른 정치적 계략 하에 헤롯은 우선 사도들 중에 야고보를 체포하고 그를 즉각 처형하도록 명령하였고 사도 야고보는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처형당했다. 교회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급작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헤롯은 또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기념으로 베드로를 체포할 것을 명령했고 예루살렘에 방문하는 동안 베드로를 처형할 정치적인 이벤트를 마련했다. 이제 베드로도 다른 순교자들을 따라 처형될 시간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교회는 강력한 기도운동을 시작했다. 집에서 교회에서 일터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와 교회를 위해 기도를 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감옥에서 구해내셨다. 베드로는 처형이 계획된 날 아침 당당히 걸어서 감옥을 빠져나왔다. 헤롯은 분노했고 그날 감옥을 지키던 간수들이 모든 처형당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제 바나바와 바울은 자신들의 일을 다 마친 후 안디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나바는 안디옥으로 돌아가기 전 사적인 일을 하나하고 싶었다. 즉 자신의 누나 마리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바나바는 마리의 아들인 마가를 만났고 그가 안디옥으로 함께 가서 살고 싶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허락했다. 세 사람은 기원후 45년 예루살렘방문을 무사히 마친 후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년 후 안디옥에서 일어난 조그만 기도회가 또 다시 서구 역사에 남을 만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제 27장 이방인들의 교회 생활
안디옥 교회의 신앙생활은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였으며 복음을 전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제자들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안디옥 교회를 예루살렘 계열의 마지막 교회라고 할 수도 있다.
안디옥교회가 예루살렘 교회의 틀에서 벗어난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 번째 처음 안디옥으로 온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유대문화에 속에 있지 않고 이방문화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했다. 후에 이 모습을 따르는 교회들을 안디옥교회 계열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두 번째로 유대교회들과 달리 안디옥으로 온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유대지역으로 퍼져나간 그리스도인들의 수보다 훨씬 적은 소수의 그룹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울 때 복음에 대한 이방인들의 관심욕구는 매우 강력하고 컸다.
그들은 커다른 공동체 생활보다는 각 지역에 넓게 퍼져있는 소그룹 생활을 선호했다. 신앙공동체는 어떤 사회적 강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교회의 또 다른 특징은 일치성이다. 비록 지역과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해 모임의 형태나 신앙생활이 자유로웠지만 공동체를 사랑으로 묶는 복음의 실천성은 매우 뛰어났다. 이러한 복음적 사랑은 수많은 안디옥의 가정교회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다. 이런 일치성은 또 다른 특징을 가져온다. 안디옥교회는 매우 선교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루살렘교회의 그리스도인들처럼 배타적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을 남에게 전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교회는 장로들이 없었다. 이 역시 독특한 모습이다. 그들에게는 행정을 돌볼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행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행정이 상하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는 체제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함께 책임을 지고 모두가 함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그런 민주적인 관계성을 유지했다. 교회는 평등한 신앙공동체로 유지되었지만 영적인 지도자들에 대해서는 큰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교회를 시작할 때에는 장로들도 예언자들도 교사들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에게 지도자로서가 아닌 평범한 영적인 동역자들로서 마나엔 루시우스 그리스 시므온과 같은 사람들을 허락하셨다.
안디옥교회의 특징으로 그들의 영적이 기도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쉬지 않고 기도의 열매와 능력을 날마다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이러한 영적인 분위기는 교회의 시작 때부터 성령의 역사를 통해 얻은 것이며 안디옥교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주님은 이러한 안디옥 교회의 영적인 능력을 잘 알고 계셨고 그들에게 계속해서 훌륭한 지도자와 영적 동역자들을 보내 주셨다.
제 28장 14번째 와 15번째 사도
때는 기원 후 45년이다. 이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또 하나의 순간이 다가왔다. 5명의 안디옥 교회 신앙인들은 함께 모여 기도를 하며 하루를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이 모임은 평범한 기도 모임이 아니었다. 성령께서 친히 주관하셨고, 기도제목 역시 성령이 직접 내려 주셨다. 헬라인들이 가이사랴에서 회심을 한 후 주님은 새로운 교회 역사를 준비하셨다. 이곳에 모인 다섯 사람은 바로 루시우스, 마나엔, 시므온, 바울 그리고 바나바였다. 이 기도모임이 저녁 시간이 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친히 말씀을 하신 것이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까?
바울은 그 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었다. 그는 39살이었고, 신앙을 가진 지 10년 정도 되었으며, 교회 생활은 4년간 해 왔다. 바나바는 47살이었고 17년간 신앙생활을 해 왔다. 4년 전 자신이 신앙인이 된지 13년이 되던 해에서 복음의 현장에서 사역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시므온과 마나엔과 루시우스 역시 10여년 이상의 신앙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만큼의 교회 생활을 경험해 왔다. 1년 전, 그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예언자와 교사로 부름을 받았다. 이들은 강력한 신앙의 용사들이었다. 주님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이들에게 사역의 모든 것을 보여 주시고, 그들이 가야 할 길들을 알려 주셨다. 왜 성령께서는 이들에게 동시에 같은 말을 전해 주셨을까? 주님은 복음을 유대의 전통으로부터 드러내 세상에 풀어 놓으려고 하셨다. 복음은 이제 온 세계인을 위한 것이고, 모든 족속이 교회에서 복음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나바는 어떻게 부름을 받았는가? 성경에는 그의 부르심에 대한 구체적 과정이 나와 있지 않다. 단지 그가 성령의 증거를 받은 사람이고, 사도들과 성령으로부터 사역을 부여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는 분명 예루살렘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러한 소명을 깨닫기 시작했다. 바울은 어떠한가? 바울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주님을 만났다. 그는 그 만남 속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분명하게 들었다. 예수님 역시 목수의 일을 20대에 시작해서 10여년을 준비기간으로 훈련받으셨다. 그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부름을 보냄의 사역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성실한 훈련이 있었을 것이다. 보냄을 받는 자는 자기를 보내기위해 자신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12사도들에게 마지막 체험이 남았다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경험을 사도들에게 허락하셨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 사건이었다. 사도들은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직접 그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였다. 또한 주님이 부활하였을 때 직접 만나 볼 수 있는 특권도 가졌다. 이러한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단지 종교적으로 완성된 제자들이 아닌 영적으로 무장된 사도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바나바의 준비는? 그는 교회의 태동기부터 함께 있었으며 사도들의 모든 행적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사도들로부터 직접 복음을 배웠으며 성령의 역사를 삶에서 체험하였다. 바울의 준비는 어떠했는가? 바울은 성령이 그를 사도로 부르실 때까지 10여년을 신앙인으로 준비해왔다. 신앙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준비 기간으로서의 성령의 보내심을 받기 전까지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로 보냄을 받은 후의 기간이다. 사역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바울은 아라비아와 다소에서 홀로 신앙생활에 몰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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